2012년 4월 12일 목요일

[전생담/죽음이 끝은 아니다]소신공양/중국 명나라 때 이야기/ 스님의 경우를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소신공양

이야기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이야기 좋아하시지요. 150년 전 경상도 어느 큰 절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그 절 주지도 역임했었어요. 그러나 뒷방에서 한평생 공부한 적도 없고, 한 평생을 다 털어서 한두 시간 염불한 적도 없고, 중생을 위해서 선업을 쌓은 적도 없고, 부처님께 선근공덕 지은 것도 없어.


이제 늙어가지고 죽을 나이가 되니까 자기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일을 한 것이 없어. 내가 지금 죽으면 큰일인데... 아무리 살펴봐도 좋은 일을 한 것은 없어. 그렇게 살아버렸어. 허송세월을 보냈구나.

내가 스님이 되어가지고 큰 절 주지도 하긴 했는데, 구체적으로 따져보니까 좋은 일 한 것은 없어. 큰스님들 법문에, 또 경에는 염불이 최고고, 경전 독송이 최고고, 다라니도 해야 되고, 참회도 해야 되고, 불사에 동참도 해야 되고, 부모님께 효도도 해야 되고 한다는데 나는 한 것이 없어. 그러니 나는 죽으면 지옥이구나. 나는 지옥에 갈 수 밖에 없구나.

이렇게 고민 고민을 하다가 무릎을 탁 쳤어요. 햐! 나는 살았구나. 무슨 생각을 하고 무릎을 쳤느냐 하면,《법화경》에 '소신공양(燒身供養)'이라는 것이 있어요. 소신공양, 여러분 중에 아시는 분이 있을 거예요. 소신공양을 하면 그 공덕은 정말로 제일의 공덕이 된다고 하는 경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의 말씀은 독소(毒素)입니다. 아닙니다. 이건 빼야 됩니다. 어쨌든 그 스님은 그걸 생각해 냈어. 어느 큰스님이 그걸 법문했다 그거요. 말씀을 했다 그거요.

한평생 공부도 안하고, 공덕도 안 짓고, 좋은 일 한 것도 없고, 착하게 산 것도 없고, 그 대신 못 된 짓은 했어. 중이면 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계율, 엄정한 계율을 많이도 파했어. 그러니 나는 이대로 죽으면 지옥을 가.

그러니까 카바를 해야 되겠는데, ‘옳다! 소신공양을 하면 되겠다.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하자.’ 그런 생각을 하고 새끼와 석유기름을 구했습니다. 새끼 아시죠? 그래서 뒷산으로 올라가가지고 결정(결심)을 했어. 뒷산에 올라가가지고 스스로 소나무에다가 묶고 석유통을 머리에 부었어.

그리고는 성냥으로 촤~악 그어대 버렸다고. 이렇게 되었습니다. 큰 절에서 밖을 나온 스님들이 어디서 연기가 무럭무럭 나오는데 ‘앗~뜨거워 앗~뜨거워...사람 살려 사람 살려...’하는데 그 목소리가 어디서 들은 목소리다 그거요. 가만히 들어보니까 노스님 목소리야. 그래서 대중들이 모두 쫓아갔지요. 가보니까 이미 숨은 멎었어요. 완전히 절명해 버렸어.

그래서 그 시신을 옮기고, 전직 주지에다가 부자 절이니까 49일 동안을 다비문대로 잘 치러줬습니다. 49재를 잘도 치러줬어요. 그런데 그 절에 정신이 실성한 어느 40대 여인이 가끔씩 들리곤 했습니다. 그 여인이 하루는 ‘앗~뜨거워 앗~뜨거워...사람 살려 사람 살려...’하면서 다닌다고요. 그러니까 대중스님들이 모두 의아해 하지요.

49재를 잘 했는데, 그러면 극락을 갔어야 되는데, 저 여자가 왜 또 저렇게 하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도 노스님 목소리 같았어요. 그런 목소리로 그렇게 외치고 다닌다고. 그래서 그 절에서 경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하는 스님들이 모여가지고 ‘우리 스님이 극락에 못 갔다. 지금 저 여자한테 빙의 됐다.

그러니까 우리가 다시 우리 스님의 천도재를 모셔주자.’라고 했어. 그런데 천도재를 모셔줄 사람이 없어. 공부를 많이 한 스님들이 전국의 큰스님들을 두루 살펴봐서 어떤 스님을 모셔다가 ‘49재를 해 주십시오’하고 청해야 되는데 마땅한 사람이 안 잡혀. 공부를 많이 한 스님이나, 연륜이 많이 쌓인 스님들은 ‘그 종단의 스님은 큰스님이 아니다. 그 큰스님은 괜찮다’ 하는 것을 다 압니다. 많이 교유하고 많이 들어보고 하니까 알아요.

그런데 ‘햐!~ 저기 어느 깊은 산에서 이름 없이 공부를 잘하는 스님이 한분 있단다.’ 이걸 전해 들었어요. 그래서 찾아갔습니다. 요청을 하니까 ‘그렇게 하지요’ 하고 승낙을 받았어요. 그래서 다시 그 미친 여자를 잡아다 놓고 49재를 모시는 거요. 49재를 잘했어. 잘하고 나니까 회향 날 그 여자가 정신이돌아왔어.

막 절을 하면서 ‘노장 이름을 대면서 내가 누구인데, 이제 나는 좋은 데로 가게 되었다. 내가 다시 사람 몸을 받아 올 때에는 정말로 큰스님이 되어야겠다. 진짜 큰스님이 되어야겠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이걸 깨달았다. 그런데 이렇게 성대하게 두 번 씩이나 49재를 모셔준 대중들한테 고맙다’ 고 하며 백배 인사를 하더랍니다.

이것이 이야기의 줄거리입니다. 이것을 스님이 점검을 합니다. 그 스님은 명부에는 들어갔어요. 명부에 들어가기는 했어. 그러나 지옥에 갔습니다. 지옥에 갔어. 소신공양, 부처님이 소신공양 받는 분입니까? 정말로 왜곡된 가르침이올시다. 이렇게 우리 절에서는 내가 이런 말을 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대전 구미 광주 전주 인근의 절에 다니시는 신도 분들로 압니다. 이런 분들한테는 오늘 처음 합니다. 안 할 수가 없지요. 바른 말을 해야지요. 바른 가르침을 전해줘야지. 여러분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정법으로 이끌어야지.

이것이 이 스님의 사명이니까 말입니다. 나는 그 동안에 무척 많은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전번 어느 때인가 ‘정말로 나 이상의 법을 아는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내 법문 말씀을 꼭 그대로 듣고 따라 주십시오’ 하고 호소했습니다. 그 미친 여자? 정신 안 돌아왔지. 일시적이었지. 사람이 미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신병환자가 되는 이유가 있어요. 그렇게 간단히 낫는 것이 아니어. 그것은 어느 생엔가(전생에)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님을 흉측스런 방법으로 시해(弑害)한 과보입니다. 아셨습니까? 내 말 이해하겠지요.

전생에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패륜적인 소행으로 칼로 도끼로 둔기로 때려서 죽인, 하늘도 땅도 용서할 수 없는 업을 지은 과보입니다.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에서는 그거 낫게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너무도 지중한 업이 가증스럽기 때문에 손을 안댑니다. 현지사에서 손을 안대는 부분이 있습니다. 문둥병, 그런 것도 손 안댑니다. 몇 가지가 있습니다. 또 몇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데 생략하겠습니다. 그 외에는 다 할 수 있습니다. 다 해드릴 수 있습니다. 

출처/2010.1.30.토(음12.16)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대전 법문중 발췌



중국 명나라때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600~700년 전, 중국 명나라 때 이야기입니다. 성씨는  '방'이요 이름은 '효유', '방효유'라고 하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방효유의 아버지가 어머니 상(喪)을 당해서 묘 터를 잡았어요. 그러니까 돌아가신 분은 방효유 입장에서 보면 할머니지요.

이제 묘 터를 파서 그 분의 시신을 묻게 되겠지요. 묘 터를 잡아 놓고 장례를 준비 중인데 꿈에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가지고 ‘3일만 여유를 주시오. 3일만 여유를 주시오.’라고 하며 간청을 했답니다.

깨어보니까 꿈이거든요. 그래서 ‘이건 뭐 개꿈이겠지’ 하고 그대로 자기의 어머니를 그 묘 터에다가 매장을 하려고 그 묘 터를 파보니까 뱀들이 드글드글 해. 그 뱀들을 모두 태워 죽여 버렸어요. 그런데 그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이

 ‘3일만 기한을 달라. 내 자손이 800이나 되는데 3일만 주면 전부 옮겨 줄 것이다. 그러니까 3일만 기한을 주시오. 만약 당신이 내 말을 들으면 크게 좋은 일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큰 액운이 닥칠 것이오.’ 이런 말을 했어요.

그런데 이 방효유의 아버지가 그걸 믿지 않고 묘 터를 파 보니까 그 많은 구렁이(뱀)들이 있는데 다 잡아다가  불에 태워 죽여 버렸어요.

나중에 어떻게 되었느냐? 그 후로 방효유가 한림학사 까지 되었습니다. 한림학사라고 하면 한직(閒職)이지만 나라에서 알아주는 석학이어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방효유가 모반(반역사건)에 연루가 되었답니다. 그 당시 왕(천자)이 성조예요. 성조가 화를 내어가지고 ‘이 놈은 10족을 멸해라’라고 명한 거예요. 10족을 멸하고 보니까 약 800명이 되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짐승(동물)중에서 사람의 영체가 들어가는 동물을 알지요. 뱀은 들어가지요. 그런데 우리는 지난날 그 많은 업을 지어놓고 자기는 깨끗이 사는 줄 압니다.

자기는 깨끗이 사는 줄로 알아요. 아니지요. 명부에는 모든 것이 입력됩니다. 자기의 행위는, 자기의 신․구․의 삼업의 행위는 전부 명부에 입력이 되고, 그것이 입력된 것은 기록 되어서 장부로 보관 됩니다. 똑같이 내 자신의 영체에도 반영이 됩니다.

그 업의 종자는 내 영혼체에 그대로 심어집니다. 업의 종자는 절대로 썩지를 않습니다. 업의 종자는 반드시 인연 따라서 싹을 틔워 꽃을 맺고,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를 맺을 때에는 화(禍)를 당하지요(나쁜 짓을 했으면).

그래서 영혼체를 볼 정도의 수행의 경지에 오른 불과(佛果)를 증한 사람은, 스님이 가끔 이야기 하지만 저 영혼체에 쇠사슬로 묶여 있다든지 하면 ‘이제 저 사람은 곧 식물인간이 되겠구나.


또는 중풍을 맞겠구나.’ 하는 것을 압니다. 그 영혼체에 묶여있는 쇠사슬을 잘라주고, 그것을 완전히 분해시켜 버릴 수 있는 분은 오직 우리 부처님뿐입니다. 자, 합장하시고 염불을 좀 하겠습니다.

출처/2009.10.25. 일(음9.8)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 법문중 발췌




스님의 경우를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관세음보살님, 석가모니부처님의 염불을 많이 했는데 스님의 경우를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이《관음경》을 읽으면 온갖 불가사의한 신통력(가피력)으로 거기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여러분! 정말로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여러분이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나는 스물다섯 살(25세)쯤 되었을 때 병역 기피가 되었는데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부모님 모르게 도망쳐가지고 부산에 가서 스님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와서 스님이 되었다는 편지도 안 했어요. 아버지 어머니가 너무도 보고 싶어. 그래서 편지를 띄웠습니다. 그 당시 50년 전에는 거의 다 중앙정보부(현 안기부) 보안과에서 편지를 검열했습니다. 그런 줄 모르고 순진하게 편지를 그대로 보냈습니다. 생활하는데 있어 뭔가 좀 불안해서 우리 아버지한테 부탁을 할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그 고을에서 면장을 하셨기 때문에 이런 정도는 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증명서 하나를 발급해 달라’고 편지를 띄웠습니다. 그냥 떠나왔기 때문에 증명서도 없었습니다. 그 편지가 부산진구 보안과에서 검색을 당했습니다. 스님은 그 때도 부산진구 경찰서 유치장을 다니면서 법문을 했어요. 그러니까 유치장에 구속된 피의자를 위해서 법문을 하곤 했었는데, 어느 날 스님이 머무르던 절에 형사가 잡으러 왔어요.

그 형사(보안과 직원)와 같이 가니까 부산진구 경찰서로 데리고 가요. 부산진구 경찰서에는 스님이 법문을 하러 다녔는데, 과장들이 나를 데리고 2층 유치장 앞으로 가서 유치인들에게 법문을 하도록 안내를 하니까 나를 아는 과장들이 많아요. 그래서 과장이나 계장이 나를 보고 어떻게 왔느냐며 물어요. 이러이러해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지요. 그때(휴전 무렵이지요)의 병역기피는 무조건 구속이었습니다. 판례가 8개월 징역이어요.

그렇게 못 박혀 있었어요. 대통령이 특명으로 ‘병역기피는 절대 용서하지마라’는 거예요. 이제 보안과를 거쳐 형사과에서 전부 조사를 받고 하는데 구속영장을 신청하더라고요.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구속영장을 신청했어요. 그런데 과장이 와서 나를 보고 ‘스님! 조금만 기다리시오. 병역기피 이것은 구속입니다. 구속인데 내가 서장한테 가겠습니다.’그러더라고. 그래가지고 내가 조사받은 서류를 들고 과장이 자기 사인도 안하고 서장한테 갔어요. 그 결과 불구속으로 해왔더라고.

불구속이 되었어요. 그때는 엄동설한, 아마 절기상 동지(冬至)쯤 이었을 거예요. 만약에 구속되었으면 죽도록 고생했겠지요. 그런데 불구속으로 검찰까지 갔습니다. 이제 한두 달 있으니까 검찰에서 출석해 달라는 연락이 왔더라고요. 검찰에 출석하니까 담당검사가 불교신자예요. 내가 들어가니까 나를 쳐다보면서 ‘어떻게 해서 병역기피를 했오’ 라고 묻지를 않아. 불교 교리를 비롯해서 불교와 관련 된 것만 물어 보더라고요. 그래서 불교교리에 대한 대답을 쭉쭉 하니까 그 입회서기가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는 거예요. 나를 살려주려고. 그래서 검사가 기소유예처분을 했습니다.

‣그 다음, 35살 무렵에 서울시내에서 좋은 사찰 주지를 했습니다. 중앙상임포교사였고 재무부장 이었습니다. 그 때 경북대학을 졸업한 '장미'라는 별명을 가진 스님이 쿠데타를 일으킨 거예요. 아마 아는 분이 있을 거요. 중앙정보부직원을 사칭하고, 외부 전화선을 절단하고, 워키토키를 들고 20여명의 깡패를 데리고 와서 저녁에 총무원 청사에 난입한 거예요. 그래가지고 국장 ․ 부장 ․ 원장 ․ 종정을 아래층 지하(5층건물이지요) 방에다가 쳐 넣은 후(감금하고) 전부 옷을 다 벗겨 놓고 각목으로 두들겨 패는 거예요. 저녁 내내 두들겨 맞았어.

그때 나는 재무부장 이었는데 나만 빠졌어요. 나는 시내 주지니까 아침 9시에 총무원에 들어갑니다. 분위기가 이상하더라고요. 나하고 무진장스님이 상임포교사이면서 재무부장을 했는데 거기에 있던 무진장스님이 너무도 많이 맞았더라고. 그래서 ‘무슨 일이오?’하니까 저녁 내내 이렇게 당했다는 거예요.

원장이던 영암스님도 무척 많이 맞았고, 종정을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그놈들이 종권을 뺏으려고 종정을 칼로 내리칠 때에 총무국장(지금은 돌아가셨을 거요)이 몸으로 막았어요. 그래서 총무국장의 손목이 칼을 관통한 사건이 있었어요. 그래서 전부 그놈들에게 내줘버리니까 그 사람이 하룻밤 종정을 했지. 그래서 그렇게 맞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나 혼자만 쏙 빠졌습니다. 참 희한 했습니다.

‣그 다음에 다른 시내의 사찰 주지로 있었을 때에 그 때도 중앙포교사 였고, 부장으로 있었습니다. 전두환씨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잖아요. 첫 번째 불교법난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천주교, 기독교를 다 잡으려고 한 거예요. 첫 번째로 불교가 걸린 거예요. 본사주지 ․ 삼직 ․ 본부 ․ 국장 ․ 원장 ․ 종정 등 하루아침에 150명이 전부 검거되어 가지고 보안사에 끌려갔습니다.

그래가지고 종단 지도자층에 속하는 각 스님들의 그 많은 비리를 들이대면서 가리지 않고 두들겨 팼습니다. 아마 한두 달 정도 맞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빠진 건 나입니다. 그때 내가 신문사 편집국장도 맡았었습니다. 재무부장, 역대재무부장이 다 구속되었던 거예요. 그런데 보안사에서 나만 빠졌다 그거예요. 그래서 나를 언제 잡아가나 하고 있는데 아주 빠졌습니다.

‣그 다음, 서울지검 특수부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나는 부장이니까 하루에 수십 건 결재를 하는데, 결재를 한건 잘못한 것이 있었어요. 내가 부하인 과장 국장 말만 믿고 도장을 콱 찍은 것이 있었어요. 이것이 문제가 되어 가지고 어느 사찰에서 나를 고발했어요. 그것이 이제 대통령(청와대)으로 해서 밑으로 내려와 가지고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다루게 되었습니다. 나를 도와 달라고 한 것도 아니어요. 그 소식을 내가 먼저 알았죠.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출석하라는 말도 없는데 내가  특수부에 갔어요. 그때 수사과장이 검사가 아니고 사무관이 하더군요.

그 수사관이 ‘왜 오라고 하지 않았는데 왔느냐. 당신 오라고 하는 날짜가 지금 있다. 그런데 왜 지금 왔느냐?’라고 하여 ‘나는 죄가 없어서 왔습니다.’라고 하니까 ‘그러면 한번 조사해 보자’ 해가지고 조사를 다 했는데 완전히 나를 구속시키려 했더라고. 구속을 딱 시키려고 그렇게 유도하더라고요. 그래서 조사를 끝내고 ‘이제 오라고 하면 꼭 오시오.’라고 하더라고요. 오라고 하는 날짜에 꼭 오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 자신이 좀 불안 하더라고. 완전히 구속하려고 하는 눈치예요. 그때 고등학교 친구가 나하고 참 친한 사이였는데 그 친구가 서울형사지방검찰청 부장으로 있었습니다.

그 친구한테 갔어. 찾아가서 ‘내가 이러이러한 처지에 있네. 야! 나를 구속하려고 하는데 이거 야단났다.’ 하니까 그 친구가 ‘자네의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특수부 그 사무관은 00지청에서 내가 데리고 있던 부하야. 너 여기 가만히 있어. 내가 갔다 오겠네.’하고 이 친구가 내 건을 가지고 특수부로 갔어요. 갔다와가지고는 ‘야! 너 큰 일 날 뻔 했다. 구속하려고 했어. 그런데 안 할 것이다.’ 부장인 친구가 그러더라고. 그래서 구속을 면했습니다.

여러분도 필수적으로 아침에 '석가모니불 공부'를 하시길 바라고, 그 다음에 스스로 살펴서 나는 '관세음보살의 신앙'으로 한평생을 살 것인가, '지장신앙'으로 살 것인가를 선택하십시오. 두 부처님(보살님)을 내가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을 염하고 싶습니다’ 하는 분은 꼭 아침에 우리 부처님 공부를 하시고, 그리고 시간 날 때에 관세음보살님을 하십시오. 그러면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이 여러분을 아셔요. 여러분이 위급할 때에, 가령 배를 타고 가는데 파도가 4~5m가 된다? 잘못하면 전부 전복되거든. 그때 여러분이 그 배에 타고 있으면 살릴 수 있어.

여러분 때문에 그 배에 탄 사람들이 다 살아. 그러니까 이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은 아까 말씀 드렸듯이 어마어마합니다. 어마어마해. 또 극락가는 문제도 좌보처 이시기 때문에 다리 가교 역할을 해줘. 그러니까 석가모니부처님, 관세음보살님을 많이많이 찾으십시오. 여러분들은 이제 시간이 좀 있을 것이니까 석가모니부처님 공부 후 한 시간씩 할애해가지고 많이 찾으십시오.

그 대신 석가모니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께서 “햐! 참 요놈, 참 착하게 사네. 법문 듣더니 이제 완전히 180° 새사람이 되었네.”라고 할 정도로 되어야 합니다. 정말로 새사람이 되어서 그렇게 염하면 반드시 가피가 옵니다. 이 법문 끝에 삼귀 오계 십선 법문을 해줘야 되는데 다음 시간으로 미루겠습니다. 우리 모두 스님 따라서 염불합시다. 

출처/2009.11.9.월(음9.23) 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 법문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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