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7일 화요일

[영체.영혼체는 윤회의 주체]진아眞我는 바로 영혼체 지옥 중생에서 붓다까지 가는 주인공.불교와 기독교의 파아나두라 논쟁 영혼체 관련 부분


진아眞我는 바로 영혼체
지옥 중생에서 붓다까지 가는 주인공
   
지금까지 우리 불교계에서는 영혼체의 존재를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불교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생활에서 제사도 지내고 불자들은 천도재도 흔하게 지냅니다.  무속인과 영 능력자들도 돌아가신 분의 영혼체를 보고 불러내어 대화하기도 합니다.  이 정도는 우리에게 크게 낯설지 않은일이 된지 오래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의 정서나 생활 속에는 이미 영혼체의 존재가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영혼체를 인정하지 않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어떻든 이렇게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영혼체가 불교계에서는 왜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을까요?

이것은아마도 불교의 무아사상, 그 동안 잘못 알려져 온 무아사상에 그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불교계는 무아사상을 영원불멸하는 어떤 실체의 개념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것으로 잘못이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불교의 무아사상이 바로 영원불멸의 실체인 아트만을 인정하는 힌두교와의 차별이라고 2000여 년 동안이나 강변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는 영혼체에 대해서도힌두교보다 훨씬 깊고 상세한 내용을 알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질적 차별화가 가능합니다.

사실 부처님께서 경전을 통해 영혼체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하신 부분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런이유는 영혼체에 대한 내용이 붓다의 경지에 가서야 제대로 알 수 있는 매우 깊은 교설이라는 점과, 이런 류의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해 부처님께서 무기로서 대하고 구체적으로 대답을 하지 않으셨던  사례를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 대신 부처님께서는 영혼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질적인 사례를 통해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단적인 예가 부처님 제세시의 천도재입니다.

<<목련경>>에는 부처님께서 목건련존자의 어머니를 천도시켜 준 내용이 나옵니다.

또한 앞에서 본 <<열반경>>의 상락아정도 본체계의 진아인 영혼체를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부처님께서는 영혼체에 해당하는 다양한 개념들 - 예를 들면 식신, 혼백, 신식, 건달바,중음증유같은 용어를 <<증일아함경>><<잡아함경>><<대보적경>><<약사여래본원경>> 등 많은 경전을 통해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잡아함경발가리경>>에서는 죽은 박칼리비구의 중음신을 식신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중음신은 바로 4번 영체입니다.

영산불교는 영원불멸하는 영혼체가 나의 실체 또는 본체 - 진아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공식적으로 천명합니다.  아울러 이 교설은 부처님의 정법임을 분명히 해둡니다.  이제 이 영혼체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출처/영산불교와 본문묘법연화경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불교와 기독교의 파아나두라 논쟁
영혼체 관련 부분   

이 글은 불교평론38호, 2009년 봄호에 발표된 <불교와기독교의 역사적 대논쟁석오진>의 내용을 인용하고 참고하였음을 미리 밝혀 둡니다.

상기 자료에 의하면, 19세기 후반1873년스리랑카에서 있었던 '불교와 기독교의 역사적 대논쟁'인 '파아나두라 논쟁'은 불교와 기독교라는 세계적 두 종교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각자가 신앙하는 종교의 위신을 걸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승패를 걸고 행했던 종교대론입니다.

이 논쟁에는 불교 측에서 모호티와테 구나아난다Mohottiwatte Gunananda 비구가 참가했고, 기독교 측에서는 첫째 날에는 데이비드 데 실바David De Silva 목사가,둘째 날에는 시리만나Sirimanna 전도사가 토론자로서 참가했다고 합니다.  청중은 첫 날에 5천 명, 둘째 날
은 1만 명을 넘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논쟁의 결과에 대한 평가를 보면 대체로 기독교측의 열세로 끝났다는 평이 많았다고 이 자료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그 평가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아설을 잘못 해석하여 영혼체가 없다는 것이 불교의 교리인 양 굳어졌고, 그 잘못된 교리를 두고 공방을 벌여 결과적으로 우문우답이 되어버린 이 사태에 대해 우리 불교계가 진정으로 반성하고 정법을 세워 널리 알리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논쟁의 영혼체 관련부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자료에 의하면 기독교측의 실바목사는 "불교 교리에 서는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인간의 윤리도덕이 성립될수 없지 않은가?"라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에대해 불교측의 구나아난다 스님은 "만약 기독교가 설것과 같이 영원불멸의 영혼이 존재한다면 살인을 범했다 해도 별 문제가 없다는데 귀결 된다. 

예컨대 사람을 죽인 것으로 말미암아 육체가 파괴되어버린다 해도 영혼은 불멸하기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인간들에게 불멸의 생명 또는 영혼이 존재한다고 생각함으로써 거꾸로 윤리도덕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라고 되받아졌다고 합니다.

참 실소가 나오는 장면입니다.  영혼이 없다고 전제한 것도 물론 잘못이지만, 영원불멸의 영혼이 있다고해서 살인을 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보는 시각에 놀라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스님의 신분으로 부처님께서 대표적인 네 가지 중한 죄라고 정하신 4중죄 중의 첫 번째 계율인 살생중죄를 그렇게 가벼볼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특히, 이 4중죄는 4바라이죄라고 해서 출가스님이 어길 경우 자격을 박탈당하는 무서운 죄인데도 말입니다.

만약 그 당시에 기독교측의 실바목사가 영혼체가 없다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많은 모순점들을 예리하게 비판했더라면 불교측은 아마 상당히 곤혹스러워했을 것입니다. 

어떻든 이 '파아나두라 논쟁'은 불교의 교리가 '영혼체의 재를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확인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왜곡된교리가 바로 잡히기까지는 다시 일백 수십 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나마 이 논쟁이 스리랑카 불교의 회생에 공헌하는 등의 긍정적 성과가 있었다는 것으로 약간의 위안을 삼고자합니다.


출처/2천년간 무아윤회 논쟁에 종지부
영혼체 윤회론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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