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2일 목요일

[전생담/죽음이 끝은 아니다]'대각국사 의천'의 설화/ 불교_오도증입을 요구 /인간고해

 '대각국사 의천'의 설화/전생담 


고려시대의 고승 '대각국사 의천'의 설화(전생담)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고려 당시 제11대 문종왕의 4째 아들이 있었는데 그분이 유명한 대각국사 의천이어요. 고려 당시에 한 두 사람의 큰스님을 꼽으라고 하면  '대각국사 의천'과 '보조국사 지눌'을 꼽아요. 대각국사 의천은 4번째 왕자입니다. 11살 때 출가를 해서 승려가 되었습니다.

30대 초반에 중국의 송나라(그 당시 당이 망하고 송나라 건국)에 건너가서 공부를 1년 남짓하고 돌아왔는데, 이분의 전생담입니다. 이분이 갓 태어나면서 울기를 시작해요. 1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백일이 다 되도록 울음을 그치지 않아요. 계속 울어댔습니다. 왕이 하도 기이해서 몇몇 신하에게‘도대체 이 꼬마가 우는 원인을 한번 찾아 봐라’라고 특별히 명을 내렸습니다. 가끔 이 애기가 울다가 뚝 그친 적이 있어요.

그 때는 가만히 들어보니까 아주 멀리서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요. 종소리가 울릴 때에는  이 애기(문종의 4째 아들인 대각국사 의천)가 울음을 그쳐요. 그래서‘참 이상하다. 종소리가 나는 곳을 우리가 추적해 보자’고 하여 추적을 했어요. 여러분, 그것이 실화라고 하지만 우리가 받아들이기가 곤란한 신비함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화에다가 조금 보태졌으니까 믿으셔도 됩니다.

들려오는 종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만주 벌판까지 갔다는 것입니다. 도착하니까 절이 있어요. 거기서 종을 치면 애기(대각국사 의천)가 듣는 다는 거요. 그 주지를 불러들였습니다. 그 주지가 방안에 들어오니까 애기가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 그러니까 그 주지가

‘죄송하지만, 이 왕자님의 배꼽 밑을 보고 싶습니다. 내가 아는 우리 절 주지스님이 언제 입적을 했는데 배꼽 밑에다가 부처 불(佛), 없을 무(無), 신령 영(靈) 자를 썼으니까 한번 조사를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왕이 허락을 했습니다.

그래서 애기의 배꼽 밑을 보니까 과연 불무영(佛無靈)이라고 쓰였어요. 그 주지가‘우리 스승(주지스님)이 틀립없습니다.’라고 했어요. 왕이‘너의 주지 스님이 한평생을 어떻게 살았느냐?’고 하니까

‘우리 스승은 정말로 한평생을 말로 할 수 없는 기이한 점이 있습니다. 스님되기 전까지 종노릇(머슴살이) 했습니다. 머슴살이를 수 십 년 했는데 그 동안의 세경(노임)을 받아가지고 장가도 안가고 금붙이를 사서 우물 속에다가 저장을 했답니다. 몇 십 년을 하니까 금붙이 덩어리가 대단히 컸습니다. 그 당시 어느 절이 화재가 나서 소실이 되었는데 그 절의 승려들도 나몰라라하며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때 우리 스승이 머슴살이를 해서 모아 놓은 금붙이를 가지고 중창을 했습니다. 그런 후 스스로 머리를 깎고 주지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주지 밑에서 시봉을 하다가 승려가 되었습다. 주지가 되었는데 정말로 이상한 일입니다. 주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스님이 벼락을 맞아 꼽추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듬해 또 벼락을 맞았습니다. 그 이듬해에 죽어버렸습니다.’

라고 하는 거요. 주지스님이 두 번이나 벼락을 맞고 죽어버렸다는 거요. 그 참 이상하지요. 이 애기가 우리 주지스님이라는 거요. 그 운명이 너무너무도 기구하고 말로 표현 할 수 없으리만큼 이상해서 내가 배꼽 밑에다가 부디 부처가 되라고 부처 불(佛)자를 썼고, 불교에서 무(無)자가 가장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도가(道家)에서 조차도 최고의 의미를 지닌 무(無)자를 써놨고, 그리고 신령 영(靈)자도 썼다는 거요.

그게 역력하게 써져 있었답니다. 그래서 우리 스승이라는 거요. 과연 그 대각국사 의천이 왕자의 신분으로서 불도에 뜻을 두고 11살 되던 해에 출가를 했답니다. 11세 소년이‘왕과 국가를 위해서 내가 큰스님이 되겠습니다.’하고 자원을 하니 문종 임금이 감동해가지고‘너의 뜻이 그렇다면 출가를 하여 훌륭한 스님이 되어라.’

해서 승려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30살이 넘도록 수행을 잘하다가 더 많은 공부를 하기 위하여 중국의 송나라로 들어갔습니다. 1년 여 동안에 중국의 큰스님들을 모두 만나서 담론을 하고, 법열을 논의 하는 등 덕행을 쌓다가 귀국을 해서 약 4,000여권에 이르는 장소(경·율·론 삼장을 주석하는 것)를 번역했습니다.

그 당시 흥왕사에서 간경 교장도감(고려시대 속장경의 판각을 맡아 보던 관아. 선종3년(1086년)대각국사 의천의 제청으로 흥왕사에 설치)을 두고 장소 만을 4,000여권 번역 출간한 대각국사 의천은 불교 중흥에 크게 일조를 하였고, 47세를 일기로 입적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여러분한테 하는 것은 부처님의 교단을 찾아와서 불공을 하거나, 천도재를 모시거나, 크게 불사를 일으켰거나, 불·보살이 알아줄만한 크나큰 불사를 일으켰거나 한 사람들은 한평생 묘합니다. 여러분들이 금생만 가지고 볼 때는 참 우습지요. 머슴살이를 하면서 이렇게 불사를 했는데 어떻게 3년 동안에 벼락을 두 번이나 맞아가지고 죽어버려요. 그렇지요?
  
출처/2009.02.02.월(음1.8)큰스님 춘천 법문 中


불교_오도증입을 요구 

불교는 실천을 요구합니다.  아무리 학식이 있고 변재라 해도 실천수행이 없으면 안 됩니다.  세계적인 대석학이라 해도 믿음이 없고 행이 없으면 악도행입니다. 마음공부해서 깨달아야 하고 깨달음을 완성해서 아라한이 되고, 보살지에 오르고, 궁극에 이르러 붓다가 돼야 합니다.
불교는 오도증입을 요구합니다.
   

얼마 전 경상도에 사는 신도분이 40살 정도 되는 미혼인 큰따님을 데리고 찾아 왔습니다.  따님은 20년 동안 정신병을 앓아 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전생의 비밀이 밝혀졌습니다.  따님은 전생에 남자였습니다.  하루는 술에 취해 부인과 말다툼을 벌이다 화가 치밀어 몽둥이를 휘둘렀습니다.  부인이 그 몽둥이에 머리를 맞아 이내죽고 말았습니다.  부인에게는 죄가 없었지만 바람을 피운 남편이 홧김에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 억울하게 죽은 것입니다.

그때의 분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습니다.  무고혼의 시간은 정지합니다.  고혼이 된 본부인이 전생의 남편이었던 이 아가씨를 만나서 빙의한 것입니다.

전생의 남편은 술에 취해 부인을 죽게 한 큰 업보로 무서운 지옥에 떨어졌다가, 곧바로 여자 몸을 받아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전생의 업보로 정신착란증, 정신병까지 얻은 것입니다.

사람마다 지은 업이 다르다 보니 어떤 사람은 지옥을 나와 아귀 축생을 거치기도 하고 축생을 거쳐 지옥으로 드는 이도 있습니다.

전생의 남편처럼 축생을 거치지 않고 사람 몸을 바로 받아 오는 경우가 있으나, 그런 경우에도 업병을 얻거나 큰 불행을 당하는 것입니다.

전생의 남편은 본부인을 두고 딴 여자와 상관했으므로 성이 바뀌어 금새에는 여자로 왔습니다.  전생의 본부인은 그동안 고혼으로 떠돌다 전생의 남편이 사람 몸을 받아 오니, 빙의해서 원한을 갚은 것입니다.

과연 이 아가씨는 나이가 들수록 정신이 온전치 못하더니, 사춘기 이후로는 정신병 증세가 심해졌습니다.  따님에게 갚아야 할 빚이 많은 부모님이 아가씨의 어머니는 무주고혼에서 바로 사람 몸을 받아 왔다.은 마음고생을 이만저만 한 게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동안 유명하다는 한약방이며, 병원이며, 용하다는 무당은 모두 찾아가 굿을 했습니다,  절에 가서 천도재도 무수히 지냈으나 효험이 없어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불자 여러분!  절대로 죄를 지어선 안 됩니다.  마땅히 착한 일이라면 남에게 뒤질세라 열심히 실행해야 할 것이요, 악한 일, 죄 될일은 결코 범해선 안 됩니다.

하루에 죽 한 끼 먹고 사는 처지라 하더 라도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불쌍한 이웃을 위한 이타행, 보살행에 앞장서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 닦는 게 중요합니다.  불교는 마음을 닦는 종교입니다.내면의 탐진치 삼독의 뿌리를 뽑아내는 자기수행이 필요합니다. 
  



인간고해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청준아, 내 청춘아, 어디를 갔느냐!"

칠심을 갓 넘긴 시골 할머니가 눈물 콧물 범벅인 채 흘러간 노래를 연속해서 불러댑니다.  낡아빠진 흰 고무신 한 짝으로 노인정의 사랑방 바닥을 치면서 울부짖듯 부르는 곡조에, 동그란 원을지어 앉은, 마을의 20여 노인들이 손뼉으로 장단을 맞추며 울고 웃습니다.

지난 2003년 3월20일 춘분절에 아랫마를 마을회관의 노인정에 모인 노인들이 노래하고 장기자랑을 하는 시간에 본 장면입니다.

마침 내게 특별법문 요청을 해왔기 때문에 바로 옆에서 목격했습니다.

시자와 설법시간 10분전에 도착한 덕분에 그 할머니의 노랫가락을 듣고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져 눈물이 고였습니다.  무아경에 빠져 토해내는 가사와 한 맺힌 설움이 묻어나오는 곡조에 숙연해진 것입니다.

마침 옆에 않아 시중을 들어주던 이장님이 귓속말로 할머니의 애절한 삶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할머니는 겉으로 보기에는 착하고 순박해 보이는 전형적인 시골 아낙네의 상이었지만, 30대 중반에 사랑하는 남편을 여의고 짝 잃은 외기러기가 됐다 합니다.  소싸움을 즐기던 남편은 자신이 기르던 숫소의 뿔에 받혀 배가 터져 죽고 말았답니다.

할머니에게는 아들 하나 딸 넷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소아마비를 않고 있는 딸이 하나, 간질병을 앓는 딸이 또 하나 있엇답니다.  어린 다섯 남매를 어찌어찌 길러내 모두 시집, 장가를 보낸 장한 할머니였습니다.  그 동안의 마음고생, 몸고생은 이루 말할 수없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가진 것은 밭 서너 마지기뿐이라 봄에는 산에 올라가 나물이나 약초를 캐고 농사철에는 품을 팔아 자녀들을 공부시킨, 소설 같은 인생살이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저녁에는 문을 자물쇠로 단단히걸어 잠그고 애들과 한방에서 수절해 왔다는 한 맺힌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또 하나뿐인 아드님마저 서울로 직장 얻어 나가고 혼자 집지키고 살기를 십수 년!

가끔 마을에서 단체관광을 떠나거나 한 자리에 모여 놀 때마다 자기의 애창곡이 돼버린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디를 갔느냐' 를 부르면서 남편이 죽었을 당시에 신었던 고무신 한 짝을 들고 땅을 치며 통곡하듯 노래하신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 장면에 감동을 받은 나는 절에 돌아오자마자 삼매에 들어 그 할머니의 전생을 추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 할머니의 남편을 죽인 소는 지금부터 4생 전에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고약스런 심보를 가진 주인을 만나 세경도 못 받고 학대를 당했습니다.  그러다 금생에 인연이 닿아 소로 태어나 전생의 주인이었던 할머니의 남편에게 원수를 갚은 것입니다.

소아마비를 앓은 따님은 전생에 부모니께 크게 불효하고 부모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던 과보였습니다.  간질을 앓고 있는 다른 따님은 염불공부하는 큰스님의 수행을 외도라 크게 욕하고 방해한 죄보였습니다.

할머니의 남편을 죽인 소는 지금 중지옥에 떨어져 업보를 받고 있으며, 남편은 아직도 명부에 들어가지 못하고 고혼이 되어 할머니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이 전생추적은 지장보살님께 여쭤서 확인을 거친 내용 입니다.

이 불쌍한 할머니는 그날 이후 우리 절에 가끔 나오십니다.  종종나물을 캐 가지고 오시는 할머니를 불교에 귀의시켜서 요즘도 염불법문을 해주고 있습니다.  염불, 계율, 효도는 부처님께서 가장 강조하시고 모든 이들에게 권하시는 제일의 덕목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1권 중 발췌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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